중증근무력증의 다소 특징적인 증상으로 다른 질환에 비해 늦게 그 병태생리가 밝혀 졌습니다. 그렇지만, 병태생리가 밝혀지기 이전에도 증상에 대해 기술된 적이 있었으며, 어떻게 흘러 왔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으로 중증근무력증 환자가 기술된 것은 1671년입니다. 토마스 윌리스가 위의 논문에서 근력저하 부분에 다음과 같은 환자를 기술하였습니다.

‘ 아침에는 걸을 수 있고, 팔을 여기저기로 움직일 수 있으며, 무거운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점심 전, 기운이 소비되면서, 결국 근육에 영향을 미쳐 팔다리를 겨우 움직이게 된다.’

이는 중증근무력증의 특징적 증상 중 하나인, 일중변동(하루 안에 증상이 변함)을 기술한 것이며, 팔다리, 즉 사지근력 저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무엘 윌크스 (1824-1911, 영국)

1877년 영국의 사무엘 윌크스는 가이스 병원 보고(Guy’s Hospital Reports)에서 한 환자를 기술 했습니다. 당시, 여자환자가 연수마비(삼킴장애, 인후두 근력저하 등)와 근력이 변화하는 증상을 보이다가 사망하였습니다. 부검을 시행하였는데, 연수에서는 뚜렷한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사무엘은 뇌신경 부검에 유명한 사람으로 중증근무력증의 증상이 뇌나 뇌간의 이상으로 인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였습니다.

빌헬름 에르브 (1840-1921, 독일)

1879년 독일에서도 중증근무력증 환자가 보고되었습니다. 빌헬름 에르브가 안검하수, 복시, 삼킴장애, 목근육 근력저하를 보이면서 증상이 호전과 악화를 겪다가 결국 사망한 환자를 보고하였습니다.

사무엘 골드플램 (1852-1932, 폴란드)

1893년 폴란드 의사 사무엘 골드플램이 독일 신경학 저널에서 3명의 유사 환자를 보고하면서, 윌크스, 에르브, 오펜하임이 보고한 환자와 비교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지 근력을 동반하는 회복 가능한 연수마비’로 정리하였습니다.

1895년 프레드리히 졸리가 베를린에서 2명의 유사 환자를 보고하였으며, 이 증상을 전기신경생리학적 소견을 함께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myasthenia gravis pseudo-paralytica라고 병명을 지었습니다. 중증근무력 가성마비로 한국어로 해석가능하겠습니다. myasthenia는 그리스어로 근육, 근력저하를 의미하며, gravis는 라틴어로 무거운, 심각한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중증근무력증의 진단을 위해서 시행하는 반복자극신경검사(Repetitive nerve stimulation test, RNST)를 쉽게 이야기하여 졸리 검사라고도 합니다.

약제의 발견은 1934년 4월 영국 런던의 성 알페지 병원에서 데니 브라운이란 의사는 큐라레라고 하는 독 전문인데, 이를 증상을 치료하기 위한 피조스티그민을 주사하였더니 증상이 개선되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1934년 12월 로슈란 회사에서 합성약제를 시판하였으며, 1954년 메스티논(피리도스티그민)이 시판되었습니다.

참고문헌
1. Hughes, T. The early history of myasthenia gravis. Neuromuscul Disord 2005, 15, 878–886.